필수의료의 붕괴와 의료의 질, 환자안전, 그리고 직원안전
요즘은 필수의료 붕괴에 따른 의대 증원과 전공의 파업이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힐 때쯤이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는 의료의 현장과 미래의 모습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의료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영리 목적이 아닌 사명감으로 선택했고 앞으로도 그리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학생 때 배운 것은 질병의 원인과 진단, 치료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환자는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대상에 불과했고 병세가 호전 또는 완치만 되면 경과가 어찌되었든 의료인은 사명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환자는 만족을 해야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세상도 달라졌다. 이제는 같은 환자, 같은 질환이라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전하게 치료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미용이나 질병으로 인한 삶의 불편함을 개선해주는 분야를 넘어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더욱 의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이 중요하다[
1,
2].
지금까지 우리는 최고의 치료 결과를 나타내는 의료 수준과 그러한 의료의 혜택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의료의 접근성으로 우리의 의료체계는 세계 최고가 되었음을 자부하고 있었다. 그 밑바탕에는 ‘구조, 과정, 결과’로 이어지는 의료의 핵심 요소 중에서[
3] 인력이나 시설 등 ‘구조’적인 부족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의 개선과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조’적인 요소부터 붕괴하고 있다. 남아있는 최소 인력들의 사명감 하나로 버텨오던 필수의료가 제도의 왜곡된 운영으로 점진적으로 악화되던 와중에 의정 갈등에 따른 급작스런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인력 공급망마저 무너졌고 이는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남아있는 의료진의 업무 과중과 안 하던 직무,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대한 물리적, 육체적 스트레스로 직원안전도 위협을 받고있다.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
직접적으로는 전공의 파업의 여파로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지금은 대형병원, 상급종합병원들의 환자수가 줄고 중소병원, 병원, 심지어 의원으로 환자가 이동하여 그토록 수립하려던 의료전달체계가 재정립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엄중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첫째 는 대형병원, 상급종합병원이 치료해야 할 중증질환, 희귀 질환 치료 담당 인력의 ‘상대적 부족현상’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를 어떻게 극복하고 나아가 환자와 직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긴급하고 필수적인 곳에만 인력과 재정을 투입하는 경영진의 예리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 leadership이 필요하다. 둘째로 중소병원, 의원들은 상급병원으로 쏠리던 일반질환, 경증질환 환자들이 늘면서 의료인력의 ‘절대적 부족현상’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 환자안전 사고가 우려된다. 이러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 병원의 의료질 개선 활동, 감염관리, 환자안전 보장 활동 등을 확고히 해야 한다.
대형병원과 상급병원, 중소병원과 의원들 모두 구조 조정과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이 위기를 잘 넘겨야 하고 국민들의 의료소비 패턴의 변화, 정부의 합리적인 정책 개선이 이어지면 우리는 새로이 재정립된 의료체계 하에서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이번 위기이자 기회를 극복하고 활용하지 못하면 우리는 전공의가 복귀한 가까운 미래, 나아가 의사 수가 늘어난 멀지않은 미래에 또다시 경증환자가 상급병원에 몰리고 불필요한 의료수요가 증가하거나 과잉진료가 나타나는 등 의료현장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인증제도의 정착과 확대실시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고 의료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의료기관평가인증제도의 정착이다. 아직도 경증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많은 이유들 중 하나는 중소병원을 덜 신뢰하기 때문이다. 의료의 질을 신뢰하지 못하고 감염관리 나아가 환자안전을 우려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병원이 실제적으로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높은 수준의 의료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 의료인을 포함한 병원 전체 종사자가 의료질 향상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개선활동을 해야 한다. 의사는 최신 지식을 습득하고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해야 하며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종사자 또한 정확하고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제도는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의료기관은 평소에 의료의 질을 관리하고 끊임없이 의료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증을 획득했다는 것 조차 최소한의 의료의 질, 최소한의 환자안전을 보증받았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인증을 받은 기관은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수련병원, 전문병원 등 조사 의무 대상인 의료기관만이 대부분이고 인증조사 의무 대상이 아닌 종합병원, 중소병원은 60~10% 정도만 인증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4]. 이런 상황에서 의료대란으로 환자들이 중소병원에 몰렸을 경우 환자들은 양질의 의료서비스,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수 있고 갈 곳 잃은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중소병원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 자체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고 인증을 안 받으면 손해가 되어 자연 도태되는 자율적이면서도 반강제적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마침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는 인증 조사에 부담감과 거부감을 느끼는 중소병원의 인증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새로이 기본 인증(입문 인증) 제도를 준비 중에 있으므로 중소병원은 이 제도에 적극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인증에 참여하려면 평소에 병원에서 의료질 향상, 환자안전활동을 하면서 인증을 준비할 Quality improvement (QI) 전담자가 필요한데 중소병원 현실에서는 그러한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그런 인력을 학회가 육성해주고 그런 활동을 하는 전담자의 인건비는 환자안전 전담인력이나 감염관리전담자 인건비처럼 국가가 지원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채찍과 당근이 없이는 중소병원이 인증을 받아야 할 의무와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병원에 QI 전담자 없이는 의료질 향상 활동이나 인증 준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기관평가인증은 회피해도 되는 제도가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하는 제도라는 인식의 전환,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현재의 인증평가는 주간근무시간의 진료프로세스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환자는 정규근무시간 이외에도 발생하는 것이고 병원의 수용능력을 초과하여 발생할 수도 있지만 대학병원조차 야간, 휴일 진료 시 주간 진료 시 만큼의 환자안전 및 의료질 수준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의료기관은 언제 어떠한 환자가 와도 항상 똑같은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을 보장한다는 ‘universal care’의 개념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의료기관인증평가 또한 장차 이러한 개념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예비 의료인에 대한 의료질 향상, 환자안전 교육 과정
의료질 개선이라는 개념을 의료인이 되고서야 접하게 되면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이를 의료행위에 대한 제재, 간섭이라 여기고 반발하게 된다. 거기에 건강보험 심사평가, 보험청구 삭감이 겹치면 병의원의 경영인이 되어서도 의료질 향상 활동을 비용 낭비라고 판단하여 의료정책에 반기를 들고 심지어는 과잉진료, 무모한 진료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는 환자안전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의료서비스가 단순한 치료 행위를 넘어서 의료의 질 보장, 의료질의 향상, 환자안전이라는 개념을 일찍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의사, 간호사를 포함한 예비 의료인의 대학교 교과과정에 과목을 배정하여 ‘의료의 질, 환자안전’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졸업 후 큰 병원을 가든 작은 병원을 가든 의료질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조직의 리더가 되어서도 그 개념을 놓지않고 대한민국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기 때문이다.